그렇게 고민 많은 시기에 세계적인 G20 재무장관회의가 부산에서 열렸다. 세계 주요 20개국 재무장관들이 회의를 하는 큰 회의였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잡고 살아갈지 딜레마에 빠져 지낼 때 나는 G20 재무장관회의 운영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사실 이 회의는 지금까지 경험한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였다. 그리스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들이 처음으로 모여서 하는 회의라 회의장에서 각 나라의 재무장관, 차관들은 정말 열심히 자신의 국가를 지키면서 그리스를 어떻게 지원해줄지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한 분야에 저렇게 전문가가 되어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와서 크게는 전세계의 금융의 흐름과 위기 대책을 함께 논의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국제회의 기획사, 운영요원을 비하하는게 아니라 나는 계속 물과 간식들이 비워진 나라에 챙겨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Speaker가 되고 싶다. 나도 저기서 말을 하고싶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내가 이룰 수 있는 적당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지 고민했다.

고등학교 때 받은 성적들을 토대로 내가 적당히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꿈만 찾아서 꾼 것이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으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된 화려한 꿈이었다.그래서 나는 많은 경험들이 올수록 겪어볼수록 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2살 여름, 대학교 2학년 생각이 많아진 시기에 어머니께서 호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셨다. 여름 동안 호주에 있으면서 더욱 더 느꼈다. 기본을 잘하자. 영어든 학교 수업이든 내가 지금 기본으로 충실해야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가 되고싶다면 그에 맞게 깊이 있는 학습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2학기까지 1년 반 동안 그렇게 나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하루하루를 우직하게 보냈다. 화려한 경험들 보다 실력을 동반하여 나중에 그 경험들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앉이있는 엉덩이 힘을 기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전공기본과 심화에 들어가면서 경영학과 공부들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고 그로 인해 난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수업과 상관없이 아침에 가서 밤에 집에 오려고 노력했으며 방학 때는 어학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4학년을 앞에 두고 나는 미국 교환 학생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다.

'나의 20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회의 운영요원(1)  (2) 2019.06.23
엄마, 나 재수할래.  (2) 2019.06.18
Posted by 아이로드
,